보스와의 만남, 그리고..


회사에 입사해서 적응하고 1년 5개월쯤이 지났을까, 밤 9시에 선임팀 팀장님께 연락을 받았다.
서글서글한 그 팀장님은 나에게 HR 자리를 요청했다.
그리고 3년 동안 HR담당으로 활동하면서, 사람들을 이해하고 사람들을 알아갔다.

내가 4년 차가 되었을 때(그러니까, HR 3년 차) 회사에는 큰 사고가 났고, 사고의 책임으로 결국 우리 본부장은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퇴사 3주만에 다시 사무실을 찾은 그를 보자마자 나는 꼬옥 안아드렸다.
잘 지내셨습니까, 잘 하고 있냐고 서로 물어보면서.

선물을 드렸다.

사고 이후 본부 명칭이 바뀌며, 본부장님의 명패도 바꾸게 되었는데 나는 우리 본부장님이 이전에 쓰던 명패를 따로 받아놨다.

관리실에 연락해서 명패를 돌려받은 그 날 마침 그가 찾아왔는데 막상 선물을 주려고 하니 마음에 걸리는 점이 있었다.
그 아저씨는 정말로 일만 한 사람이었다. 새벽에 문제가 있다고 하면 새벽 3시건, 4시건 뛰어나와 책임을 다하였고,
우리 본부에 대한 애정도 많았지만, 그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많았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조용히 정리되었을 때, 회사에 대한 그가 느낀 배신감과 속상한 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난 그에게 명패를 선물하는게 맞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다.

본부장님이 저녁식사를 하러 가신 후, 조금 늦게까지 회사에 있었는데
얼굴이 시뻘개진 상태로 사무실에 들어오는 그의 모습을 봤다.
이곳 저곳 돌아다니시다가 내 자리로 오시더라.

내 자리에 키우던 방울 토마토를 하나 떼어 먹겠다고 하시는 그에게 방울토마토를 드리면서,
본부장님의 은색 명패를 캐비닛에서 조용히 꺼내 드렸다.

가죽자켓을 입은 그는 제법 놀라며 그 명패를 앞주머니에 넣으려고 했다.
명패가 가로로 조금 길어, 외투 앞주머니에 다 들어가지 않아 그는 외투를 조금 벗어 안주머니에 명패를 집어 넣었다.
내가 처음으로 모신 리더십의 그런 모습을 보고 난 참 다행스럽고, 고마운 마음도 들었다.

그는 내 인생의 한 페이지였다.

그는 내게 리더십을 가르친 사람이 아니라, 사람을 대하는 태도를 보여준 사람이었다.

책임을 지는 방법, 사람을 아끼는 법,
그리고 떠나는 그 순간에도 품위를 잃지 않는 법

나도 언젠가 자리를 떠날 때
직함이 아니라 사람으로 남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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